차 반도체 품귀, 판매 프로모션이 사라짐

미국 콜로라도에 사는 한 40대 가장은 지난달 새 SUV를 사려고 주변 자동차 전시장 30곳에 연락을 돌렸다. 그런데 절반은 ‘찾는 차는 이미 다 팔렸고, 원한다면 대기 명단에 올려 줄 수 있다’고 답했고, 나머지 절반은 아예 회신조차 없었다. 옛날 같으면 딜러들이 앞다퉈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느냐”며 할인 혜택을 쏟아냈을 텐데,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프로모션 대전이 벌어져야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로 공장이 수차례 멈춰 생산이 줄면서 자동차 유통 시장의 풍속도 바뀌고 있다. 차를 인도받으려면 길게는 6개월씩 기다려야 하고 여름 휴가철을 겨냥한 가격 할인 경쟁이나 엔진오일 무상 교환, 선택 사양 제공 등 각종 프로모션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전시장에 차가 없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코로나 보복 소비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 자동차 전시장에선 차가 입고되면 열흘 내 33%가 판매된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5월(18%)과 비교하면 2배 정도 빨리 재고가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기아 쏘렌토가 넉 달, 도요타 라브4는 반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코로나로 생산 라인이 마비된 인도에서는 1년 가까이 대기해야 하는 모델이 수두룩하다.

국내에서도 현대차·기아의 인기 모델인 카니발·그랜저·투싼 등은 최소 3주, 길면 6개월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한국GM·르노삼성이 수입해 파는 콜로라도(픽업트럭), 마스터(밴)도 서너 달은 대기해야 한다. 현지 공장이 반도체 부품 품귀로 생산 차질을 빚은 탓이다.

◇싸게 팔 이유가 없다

재고가 안 남을 정도로 잘 팔리는 상황에선 굳이 싸게 팔 이유가 없다. 미국 내 딜러들의 차량 평균 할인액은 작년 5월 4825달러(약 530만원)에서 지난달 2957달러(약 330만원)로 40% 정도 줄었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카스닷컴은 ‘차량 평균 할인 폭이 수년 전엔 10~12%였지만 올해는 7~8%로 줄었다’고 전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할인이 없으면 차값이 비싸지는 것과 같다. 지난달 미국에서 팔린 신차 평균 판매 가격은 약 4만달러(약 4430만원)로 1년 전보다 7% 올랐다. 중고차는 16% 오른 2만3000달러로 집계됐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수입차 실시간 할인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 겟차에 따르면, 작년 10월 출시된 BMW 신형 5시리즈 세단은 작년 12월 대비 올해 5월 할인액이 오히려 100만~200만원 정도 줄었다. 아우디 A6 세단도 100만원 정도 할인 폭이 감소했다. 수입차 관계자는 “차량 연식 변경, 계절에 따른 프로모션 전략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자동차는 출시 시점이 지날수록 할인 폭도 커지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 4월 차종별로 100만~500만원에 달했던 한국GM 쉐보레의 할인 액수는 이달 120만~25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들어 차종별 20만~50만원 할인이 전부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품귀 외에도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완성차 업체의 비용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할인 프로모션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귀에도 실적 전망은 밝다

차가 잘 팔리는 덕분에 글로벌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향후 실적 전망은 반도체 품귀로 생산에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도 의외로 밝다. 국내 증권사 18곳의 올 2분기 현대차 영업이익 평균 전망치는 1조7847억원으로 올 1분기(1조6566억원)를 웃돈다. 생산 차질로 매출은 감소할 수 있지만, 딜러에게 지급하는 판매 촉진 비용도 감소하므로 영업이익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GM은 지난달 초 “2분기 중 생산 차질이 있겠지만, 연간 총 수익 전망치(100억~110억달러)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고,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은 최근 올해 연간 영업이익률 전망치를 기존 5.0~6.5%에서 5.5~7.0%로 높였다. 판매 시장 분위기가 워낙 좋아 생산 차질을 상쇄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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